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에페이로스 왕국 (문단 편집) === 왕국의 몰락 === [[피로스 1세]]가 전사할 무렵, 장남 프톨레마이오스 역시 전사했고 삼남 헬레노스는 마케도니아군의 포로 신세가 되었기 때문에, 본국에 남아서 통치를 대행하던 차남 '''[[알렉산드로스 2세(에페이로스)|알렉산드로스 2세]]'''가 에페이로스 왕국의 새 군주로 등극했다. 재위 초기엔 일리리아 통치자 [[미틸로스]]와 전쟁을 벌였다. 한번은 부하들에게 일리리아인의 의복을 입히고 자기 영토를 약탈하게 했다. 일리리아인들은 이들이 자기들과 한 패라고 여기고 방심했다가 갑작스러운 공격을 받고 궤멸되었다. 이후 미틸로스와 평화 협약을 맺고 전쟁을 끝냈다. 기원전 260년 [[안티고노스 2세]]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스파르타, [[아테네]]와의 전쟁으로 번주한 사이, 그는 마케도니아로 쳐들어가 여러 요새를 공략하고 레프카디아를 포위 공격했다. 그러나 안티고노스 2세의 아들 [[데메트리오스 2세 아이톨리코스]]가 군대를 일으켜 데르데아에서 에페이로스군을 격파했다. 그 후 마케도니아군이 에페이로스로 쳐들어오자, 그는 아르카나니아로 피신했다가 마케도니아군이 돌아간 뒤 에페이로스를 탈환했다. 이후 [[아이톨리아 동맹]]과 아르카니아의 일부 영토를 나눠가지는 협정을 맺었다. 기원전 242년, 알렉산드로스 2세가 사망했다. 그에겐 두 아들 '''[[피로스 2세]]''', '''[[프톨레마이오스(에페이로스)|프톨레마이오스]]'''가 있었으나 아직 미성년자였기 때문에 아내 '''[[올림피아스 2세]]'''가 섭정 여군(女君)으로서 나라를 통치했다. 기원전 240년, 그동안 마케도니아 왕국의 부추김으로 서로 싸우던 [[아이톨리아 동맹]]과 [[아카이아 동맹]]이 평화협약을 맺었다. 두 동맹은 곧 마케도니아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마케도니아 왕 [[데메트리오스 2세 아이톨리코스]]는 두 동맹과 전면전을 벌이기 앞서 에페이로스 왕국과 평화 협약을 맺고 싶었다. 그녀 역시 불안정한 왕권을 다지려면 평화가 필요했다. 이에 따라, 그녀는 알렉산드로스 2세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 프티아를 데메트리오스 2세에게 시집보냈다. 이리하여 마케도니아와 에페이로스 왕국은 그동안의 갈등을 종식하고 결혼 동맹을 맺었다. [[유스티누스(역사가)|유스티누스]]에 따르면, 마케도니아와 결혼 동맹을 맺으면서 왕권을 굳건히 한 그녀는 두 아들 피로스 2세와 프톨레마이오스가 성년이 되었을 때에 통치에서 물러났다.[* 기록이 미비해서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프톨레마이오스는 기원전 234년에 사망헀고, 피로스 2세 역시 기원전 234년 이전 또는 직후에 사망했다. 그녀는 두 아들의 잇따른 죽음에 슬퍼하다가 사망했고, 왕위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아들 '''[[피로스 3세]]'''에게 넘어갔다. 그러나 피로스 3세 역시 기원전 234년 암브라키아에서 정체가 알려지지 않은 암살자들에게 살해당했다. [[피로스 2세]]의 딸 '''[[데이다미아]]'''는 군대를 일으켜 피로스 3세가 사망한 암브라키아를 맹렬히 공격했다. 주민들이 평화를 간청하자, 그녀는 자신이 왕위에 오르는 걸 인정하면 평화를 맺겠다고 밝혔다. 거래는 성립되었지만, 에페이로스인들은 이에 반감을 품었다. 기원전 233년, 음모가들은 그녀의 친척이자 경비병이던 네스토르에게 뇌물을 줘서 그녀를 죽이게 했다. 그러나 그녀는 목숨을 건졌고 아르테미스 신전으로 도망쳤다. 신전에서 사람을 해치는 건 중대한 범죄였기에 다들 그녀를 해치길 꺼렸다. 그러나 음모가들은 이미 모친을 살해한 죄로 중벌이 예고되었던 밀로를 보내 그녀를 해치게 했다. 이리하여 에페이로스 왕국은 멸망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